우울한 날들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레터가 우울을 담고 있어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당신과 우울을 나눌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아래 우울 한 점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아마도 없겠지만, 있다고 해도 그다지 부럽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울을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성장하기도 하잖아요.
당신이 이 레터를 받아 볼 때에는, 이미 4월이 되어 있겠지만 제가 레터를 쓰고 있는 지금은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당신의 3월은 어땠나요?
2월을 마무리하는 레터를 쓸 때에도 당신의 2월이 어땠는지 참 궁금했는데, 3월은 2월보다 더 많이 궁금합니다. 제게 3월이 유난히 길고 어렵고 우울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어요.
술 한잔에 털어버릴 수 있는 우울과 살면서 쉽사리 떨쳐내지 못할 것 같은 우울, 이 자리만 뜬다면 씻은 듯 없어질 우울, 오래도록 생각하고 후회할 것 같은 우울까지 3월 한 달 동안 어디 소문이라도 난 것마냥 다양한 우울이 저를 찾아왔답니다.
물론 많은 기쁨도 함께하긴 했습니다. 많은 사랑을 주고받았고,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는 시간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 우울을 뒤로 하고 그런 시간들을 나누어볼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저의 우울을 당신과 나누기까지 정말 힘들었다고, 쉽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3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귀신같이 저를 찾아온 새로운 우울을 마주하자마자 오늘 레터의 첫 문장을 떠올렸어요. 할 수 있다면 저의 우울에 동요하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스물여덟 해를 견뎌오면서 얼마나 많은 우울들이 저를 스쳐갔을까요. 모른 척 지나보낸 것도, 알고도 피하지 못했던 것도, 끝끝내 이기지 못했던 것도 있었을 겁니다. 돌이켜 보면 귀여운 수준의 우울도 있고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만큼 무거운 우울도 있네요. 그 모든 우울들이 모여 저를 이만큼 키웠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어지럽습니다.
물론 우울을 만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수준으로 성장한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를 찾아온 우울을 제대로 파악하고,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고, 포기하지 않고 지나보내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것이겠죠. 성장이라는 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헷갈릴 수 있어도, 우리는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알잖아요.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큰 사람이 되리라 믿죠.
아직도 한참 남은 이 생애에 앞으로 어떤 우울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견뎌온 우울들이 많이 도와줄 것입니다. 미운정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봐요.
저는 당신이 당신에게 남은 날 동안, 최소한의 우울만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는 해도 어쨌든 우울을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이겼으면 좋겠지만 져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둘 지나보내기만을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우울을 만나기 전의 당신과 후의 당신은 분명 달라져 있을 테니까요. 유난히 힘들었던 3월을 보내며 조금 더 욕심을 내 보자면, 그런 당신의 시간에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저의 우울을 나누어받은 것처럼, 당신이 우울을 만났을 때에 저에게도 당신의 우울을 나누어주시면 고맙겠어요.
나쁜 건 모두 내려 놓고, 좋은 것만 야무지게 챙겨서 4월로 넘어갑시다. 고생 많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