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른 저녁부터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일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요즘 저는 잘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못한다는 말을 가져다 써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로 따지고 보면 가만히 앉아서 책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그런 시간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니 애를 써서 가져야 하는 것인데.. 하는 생각도 뒤따라옵니다.
쓰지 않고 읽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우선 제 마음에 그나마 붙잡고 있던 여유가 사라집니다. 원래도 저는 여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여유로운 사람이나, 제 삶에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여유가 부족한 편이지요. 제게 '여유 있음'은 '미련 없음'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애정하는 대상에 대한 여유를 갖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것들에 대한 미련들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가 봐요.
아무리 여유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매 순간 여유로울 수는 없겠지요. 누구나 자신의 '여유 없음'을 마주하는 시간이 있겠지요. 각자가 겪는 '여유 없음'의 모양은 엇비슷할 것 같은데요. 바깥으로 표출되는 모양은 천지차이일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아니 사실은 아주 예전부터 '여유 없음'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저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여유 없음'은 '미련 있음'과 닮아 있어서, 솔직하고 투명하게 보여 주기가 어렵습니다. 창피하고 짜증이 나요. 무언가를 잘 하고 싶은데 안 될 때, 누군가가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을 때, 더 멋진 내가 되고 싶은데 여전히 그냥 나일 때 주저앉은 저를 귀신같이 찾아오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각색하지 않고 그대로 표출하기는 정말이지 저에게는 아직 불가능합니다. 물론 더 어릴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겠지만요. 지금도 어떤 어른보다는 낫겠지만요. 같은 맥락으로 제가 바라는 멋진 저의 모습에 도달하려면 어우 아직도 까마득합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저 그래도 지금은 그런 마음을 솔직하고 투명하게 보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보낸 레터에 오류가 있었어요. 본문 일부가 복사되어 같은 내용이 두 번 들어갔더라고요. 자동으로 저장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인 것 같은데..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읽어 봤더라면 지우고 보낼 수 있었을 텐데요. 쓰자마자 확인도 안 하고 냅다 보내 버렸습디다. 읽는 데 불편을 주어 미안합니다. 앞으로는 확인하고 보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으나.. 급하면 또 그냥 보내 버릴 수도 있어요. 모쪼록 이런 제가 보내는 편지를 꾸준히 읽어 주어 고맙습니다.
아마 제가 보내는 레터를 가장 먼저 읽는 사람은 항상 저일 거예요. 그날도 가장 먼저 열어 보고, 가장 먼저 실수를 발견했어요 제가. 그리고 빠르게 외면했습니다.(ㅋㅋ) 수정도 안 되고, 그렇다고 다시 보내자니 읽지 않은 메일이 쌓이는 피로감을 더할 것 같아서 그냥 모른 척했습니다. 저의 '여유 없음'이 모른 척으로 발현된 순간이었던 것이지요.
편지란 그런 것이니까요. 일단 보내면 다시 가져올 수 없는 게 편지니까요. 수첩에 쓰는 글을 지나, SNS에 게시하는 글을 지나 당신에게 직접 부치는 이 편지에 다다르기까지 제가 누군가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들이 있었던 것이니까요. 부담 갖지 않되 신중하게, 집착하지 않되 성실하게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당신에게 '여유 없음'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은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해결하시는지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