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지난 주 레터를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모른 척 넘어가고 싶은 마음 반, 콕 집어서 수면 위로 올려내고 싶은 마음 반입니다. 뭐 큰 이유를 대보자면 하필이면 주말부터 월요일이 끝날 때까지 몸이 좋지 않았던 이유가 있겠고요. 갈수록 진심이 담기는 이 레터에 담을 진심이 채 충전되기 전에 일주일이 돌아왔다는 이유도 있었어요.
대책 없이 한 주를 건너뛰고 나니까, 슬슬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기더라고요. 한 레터 분량의 진심도 살금살금 채워지는 것도 같고요. 하여튼 아무튼 어쨌든, 약속을 어겨서 미안합니다. 앞으로도 가끔씩 어기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모쪼록 넓은 아량으로 저의 편지를 받아 읽어 주시기를 바라요.
'친구'라는 글자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죠.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없어지기만 하고 생기지는 않는 것처럼 이야기들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친구가 생기지 않을 텐데 어쩌지 하고 걱정한 적도 있었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저는 더 이상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 제 곁에 있는 친구들은 딱 세 개의 그룹으로 정리할 수 있었거든요. (초)중학교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끝입니다.
물론 각 그룹에 해당하는 친구들이 적지는 않습니다. 저는 친구들을 좋아하고 저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주로 만나기 때문에 친구가 부족하다거나 불만족스러운 우정을 쥐고 있던 적은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친구가 생기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다른 차원의 걱정이었습니다. 대학원에 뜻이 없으니, 더 다닐 학교가 없는데 내 친구들은 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고.. 그럼 나는 이제 새로 만나는 친구가 없겠구나 했어요.
동시에, 수많은 시공간을 지나오면서 왜 학교에서만 친구들을 사귀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최소 3년은 보아야 상대를 나의 '친구'로, 나를 상대의 '친구'로 인정하는 깐깐한 면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기도 했고요.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몇 년 전 블로그에 일기를 쓰면서 이런 문장을 썼어요. '사람은 누구나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갖고 있고, 서로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나보다.' 낮부터 밤까지 꼬박 농담 반, 진담 반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드는 생각도 비슷합니다.
정말 다행인 건, 시간이 갈수록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저의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보여줄 줄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학교를 더 다니지 않아도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예요.
이 레터를 받아 읽는 여러분의 장난꾸러기 같은 면모는 이미 제가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물론 제가 모르는 더 극심한 장난꾸러기의 얼굴을 가진 분들도 계시겠지만요. 당신이 지었던 개구진 표정이 한 장면이라도 떠오르는 것이 큰 행운으로 느껴져요. 우리가 서로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나누었다는 뜻이니까요? 여러분은 보통 어떤 순간에 어떤 사람과 친구가 되나요? 혹시 우리가 친구가 되었던 순간을 기억할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개구진 얼굴이 궁금합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생각하는 나의 개구진 얼굴도 궁금하고요. 장난스러운 답장도 좋겠어요. 당신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