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끝낸 게 얼마만인지
오랜만에 일정이 없는 일요일을 보냈어요. 읽은 것은 없고, 읽을 것들만 쌓이던 요 며칠인 터라 일찍부터 카페를 찾았습니다. 멀쩡한 책상과 의자가 있는데도 어쩐지 집에서는 책이 잘 안 읽힙니다. 공감하시는 분들 계시죠?
'읽어야 되는데' 생각만 하고 읽지 않던 책이 세 권 있었는데요. 개리 르완도스키의 『사랑에 관한 오해』, 김금희의 『식물적 낙관』, 박의나·윤경민의 『근데 에디터는 무슨 일 해요?』입니다. 그중 오늘은 『사랑에 관한 오해』를 집어 들고 카페를 찾았습니다.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300쪽에 달하는 분량을 채웠더라고요. 포괄적인 관계도 아니고 오로지 연애 상대와 나,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만으로요. 저는 연애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운명론자적 입장을 가진 터라..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런 방대한 자료와 연구 논문이 실제 연인 관계에 적용이 되나 싶기도 했고요. 더 나아가 이게 진짜 쓸모가 있을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적지 않게 했거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뚝딱 끝낼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관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그 오해가 왜 오해인지, 사실에 가까운 경향성은 무엇이고 그것들은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저 또한 아주 좋은 타이밍에 이 책을 만난 것 같아요.
저에게 가장 신박하게 와닿은 대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과학적인 관점으로 사랑을 바라봐야한다.
개리 르완도스키(이지민 옮김), 『사랑에 관한 오해』, 알에이치케이(2022), p.20
사랑과 과학이라니.. 과학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사랑을 과학할 수가 있는 건가요. 그런데 읽어보니 될 것도 같더라고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것, 불충분한 정보로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는 것, 혼자만의 생각을 무기로 관계를 위협하지 않는 것 등등 비과학적 요소를 잠깐 내려놓고 과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도 같더라고요. 물론 사랑하는 사이에 오가는 비과학적 요소의 중요성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려고 사랑하는 거지 과학 할 거였으면 연구원이 되었겠죠.
딱딱 떨어지는 요소들을 기준으로 관계의 문제점을 관찰해보면, 마음을 덜 앓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라는 유한한 자원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너무 많은 시간을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데 써버리잖아요. 그럴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서 사랑하는 데에 쓰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아쉬운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문제 해결에 조금 더 단순하게 닿을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더라고요.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이 관계 종결을 포함한다고 해도, 그게 나쁜 결과는 아니니까요.
이러한 담론을 나누고 나면, 버릇처럼 되뇌는 생각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나 자신부터 사랑해야지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는 없지요. 이건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그건 사랑이 아닐 겁니다.
내 안에 샘솟는 사랑이 나를 가득 채워야 비로소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흘러갈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내가 자리한 곳곳에 사랑이 묻고 나면 내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겠지요. 사랑을 이야기하자니 신이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