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해? 잤어?
목소리가 잠겼길래. 나 때문에 깬 줄 알았지. 아니면 됐어. 별 일은 없지. 출근도 안 하고 약속도 없고 해서 아침부터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 해먹고 했는데도 아직도 이 시간이네. 이래도 저래도 아까운 시간만 가고 보내고 싶은 시간은 안 가나봐 그치.
언제 일어났는데. 더 자. 왜 일찍 일어나서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거야.
집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 음악 틀어 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노래가 나오는 거야. 우리 그때 속초 가면서 들었던 노래 있잖아. J가 처음 듣고도 제목을 바로 알아 맞혔다던 노래. 그러고 보니까 우리는 둘이서 여기저기 많이도 쏘다녔다. 여행 갈 때마다 반복재생 해서 듣던 노래들 있었는데 다 기억해?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겠어. 그래도 우리 베트남 갔을 때 정글 들었던 건 기억나. 네가 틀어줘서 처음 들었는데 그 여행 내내 그 노래만 들었잖아.
맞아 맞아. 그래도 기억하네? 그때 우리 대학생이었는데 그치. 있는 돈 없는 돈 싹싹 긁어 모아서 갔다 왔잖아. 그러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나이만 5살이나 더 먹었어.
그때도 나쁜 놈 하면서 울고 지금도 나쁜 놈 하면서 우는 거?
그렇게까지 정확히 꼬집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난 가끔 내가 갑자기 스물여덟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스물셋, 넷까지는 아니어도 스물다섯 정도에 멈춰 있는 것 같아. 스물여섯에 다녀온 유럽도, 스물일곱에 배웠던 테니스도, 스물여덟에 분 비눗방울도 다 스물다섯의 내가 겪은 일 같아. 갈수록 시간이 무섭고 또 우스워져.
그치. 나도 그래.
빨래를 두 번이나 돌리고, 책 한 권을 다 읽고, 두 시간을 걸어서 배드민턴을 치고 왔는데도 하루가 남았어. 나이만 먹고 하루가 안 가는 게 무서워.
백수가 쉬운 게 아니니까. 이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