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답장은 하지 마셔요
뉴스레터 발송 사이트에서 설정한 발신자 메일 주소가 온전치 않아, 당신의 답장이 저에게 닿지 않습니다. 그러니 답장은 하지 마셔요. 그럼에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미 당신은 저의 연락처를 알고 계실 테니 어떤 방법으로든 전해 주셔도 좋습니다.
따뜻한 날입니다. 오늘은 알람 없이 일어나 간단하게 밥을 먹었고요. 미루고 미루고 미뤄 왔던 방 청소를 해내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이렇게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 나가면 되는 것이겠지요. 때마다 잊어버리고 마는 해결책입니다.
반드시 손을 잡고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한 개의 손가락이 닿아 있을 수도 있고요. 손바닥만 닿아 있을 수도 있고요. 그렇지 않으면 시선이 닿아 있을 수도 있겠고요.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있는 햇살이 서로에게 닿을 수도 있겠지요. 아무것도 닿아 있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우리가 닿아 있던 시간은 어디 가지 않고, 그 시간이 담긴 마음이 도망간 것도 아니니까요. 사랑은 당신이 사랑을 버리기 전까지는 만물의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요.
다들 아실 테지만, 저는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글을 쓰고부터는 지겹도록 되뇐 문장이에요. 그리고 이것도 아시겠지만.. 그 사랑은 항상 하트 모양으로 나타나지는 않더라고요.
대상을 웃기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찌르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중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제 사랑의 모양은 저를 서글프게 하는 방식입니다. 저를 서글프게 하는 것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겠어요. 피하고 싶어도 자꾸만 다가오는 출근 시간, 마음처럼 진행되지 않는 일, 들어오는 족족 빠져나가는 월급, 무더운 여름과 시린 겨울 같은 것들도 저를 아주 서글프게 하니까요. 그 많은 것들 중에서도 저를 가장 서글프게 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저의 사랑이네요.
아니, 생각해 보니 만약 내 사랑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밖에 없다면 그건 제가 되는 게 마음은 편하겠어요. 또 생각해 보니.. 제가 다치는 건 저만 다치는 일은 아니긴 해요. 다친 사람은 곁에 있는 누군가를 또 다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정말 어렵습니다. 내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당신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는 일이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이런 생각으로 귀한 주말을 보낸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약간의 흥미가 될 수도 있겠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보다 편할 수도 있겠어요. 하필이면 그런 시간이 가만히 기다리는 데에 젬병인 저에게 왔다는 사실이 애석하긴 해도요. 언제까지나 못 기다리는 사람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80번쯤 반복한 결심인 것 같기는 해도.. 잘 기다려 봐야겠지요.
같은 결심을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하고 기특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하려는 제가 좋습니다. 잘 못 하니까 조금 봐줘 하고 말하는 용기도 높이 사고요. 늦었을지 모르지만 반성하고 다시 쌓아 가려는 의지도 응원하고 싶습니다. 불확실함 위에 내가 옳다고 믿는 집을 뚝딱뚝딱 만드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요. 저는 이런 제가 안쓰럽고, 멋지고, 든든합니다. 당신도 그렇게 느끼길 바라요. 당신과 저 모두에 대해 말이에요.
마지막 편지를 보내고 한 분기가 흘렀습니다. 오늘이 벌써 4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네요. 재미있던 것들이 재미가 없어진 탓에 여러 날 실망하기도 했습니다만, 또 재미있는 것이 생기겠지요. 애써서 찾고 있으니 금방 찾아오길 바랍니다. 뭐든 재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당신의 늦겨울과 초봄이 재미있고 편안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당신의 남은 날들이 더 재미있고 더더 편안하기도요. 이 편지를 읽어 주어 고맙습니다.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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